고양이 혈압이 갑자기 올라가고 뒷다리에 힘이 빠진다면, 단순 근력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부신에서 알도스테론 호르몬을 과다 분비하면서 혈압, 칼륨, 나트륨 수치가 한꺼번에 틀어지는 경우입니다. 문제는 초기 증상이 식욕부진이나 무기력함처럼 애매해서 다른 질환으로 착각하기 쉽다는 것. 치료 타이밍을 놓치면 망막 손상으로 실명까지 갈 수 있습니다.
부신에서 일어나는 일: 알도스테론 과다분비란
원발성 알도스테론증(코른 증후군)은 부신 피질 사구대 세포가 알도스테론을 정상보다 과하게 분비하는 질환입니다. 정상 상태에서 알도스테론은 신장에서 나트륨 재흡수와 칼륨 배출을 조절해 혈압과 전해질 균형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호르몬이 과다하면 신장의 칼륨 손실이 가속화되고, 동시에 나트륨이 늘어나 혈압이 올라갑니다.
고양이에서 이 질환이 발생하면 보통 부신에 양성 종양이 있거나 부신 세포 자체가 과활동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중년~노령 고양이(8살 이상)에서 더 자주 보이며, 증상이 수주에서 수개월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놓치기 쉬운 초기 신호들
고양이 나이가 8살을 넘었다면 아래 증상 중 2개 이상이 보일 때 혈압·혈액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활동량 급감: 평소보다 자는 시간이 늘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횟수가 줄었거나 점프할 때 머뭇거립니다. 이건 혈액 속 칼륨 부족으로 근육 신호 전달이 약해진 것입니다.
식사 패턴 변화: 밥을 남기거나 예전만큼 갈구하지 않고, 먹다가 멈추는 일이 잦아집니다. 구토는 드물지만, 식욕이 계단처럼 떨어집니다.
음수량 증가와 빈뇨: 물을 자주 마시고 화장실을 더 자주 가는 것 같습니다. 부신이 혈액량을 늘리려다 보니 갈증이 생기는 것입니다. 물을 자주 마시는 고양이는 당뇨와 신부전도 함께 확인하세요.
몸을 자꾸 낮게 앉는 자세: 허리나 목을 평소보다 더 굽힌 채로 있습니다. 이것이 심해지면 경부 복굴이라는 특징적 증상으로 진행됩니다.
경부 복굴: 저칼륨혈증의 가장 특징적 신호
혈액 중 칼륨(정상 3.5~5.0 mEq/L)이 3.0 이하로 떨어지면, 척추 신경과 근육이 신호를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그 결과 목과 척추가 앞으로 구부러져 마치 "C자" 모양이 되는 것을 경부 복굴(ventroflexion)이라 합니다.
심한 경우 고양이가 고개를 들지 못해 바닥 높이에서만 밥을 먹고, 걸을 때도 척추가 아래로 처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직접 본 고양이는 경부 복굴이 심해서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춘 것처럼 완전히 구부러진 상태였는데, 스피로노락톤 투여를 시작한 후 3~4일 만에 목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증상은 스피로노락톤으로 혈액 칼륨을 올리면 빠르게 호전되는데, 이것이 바로 이 질환이 치료 가능하다는 증거입니다.
고혈압으로 인한 합병증: 망막 손상과 실명
알도스테론 과다는 나트륨 재흡수를 증가시켜 혈압을 올립니다. 고양이의 정상 혈압은 100~130 mmHg인데, 원발성 알도스테론증이 있으면 150~180까지 상승합니다.
높아진 혈압이 오래 지속되면 눈 망막 혈관이 터져 망막박리(retinal detachment)가 생기고, 급작스러운 실명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질환으로 진단받은 고양이 중 일부는 이미 망막 손상이 있는 상태로 병원을 찾습니다.
혈압 측정 방법: 동물병원의 자동혈압계(oscillometric method)로 측정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비침습 꼬리 커프(tail cuff)는 가정에서도 사용 가능하지만, 고양이가 움직이거나 두려워하면 오차가 크므로 병원 측정이 더 신뢰할 수 있습니다.
스피로노락톤 투여: 언제부터 효과가 나타나는가
스피로노락톤은 알도스테론 수용체 길항제로, 알도스테론이 신장에서 나트륨을 재흡수하고 칼륨을 배출하는 것을 차단합니다. 일반적 투여량은 1~2 mg/kg, 하루 2회입니다.
투여 후 3~5일: 혈액 칼륨이 오르기 시작하고, 경부 복굴이 조금씩 풀립니다. 고양이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걷는 자세가 바뀝니다.
1~2주: 근육 약화가 대부분 회복되고, 활동량이 눈에 띄게 늘어납니다. 점프 높이가 돌아오고, 평소처럼 높은 곳에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식욕도 함께 돌아옵니다.
3~4주: 혈압도 안정화되기 시작하고, 전반적 활력이 회복됩니다.
투여 후 함정: 고칼륨혈증의 위험
스피로노락톤을 투여하면 칼륨이 자동으로 올라가므로, 계속 모니터링하지 않으면 고칼륨혈증(혈액 칼륨 5.5 이상)이 새로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고칼륨혈증은 부정맥과 심정지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투여 시작 후 1주, 4주, 8주 후 반드시 혈액검사로 칼륨과 나트륨을 재확인해야 합니다.
만약 칼륨이 너무 높아지면 용량을 줄이거나 투여 간격을 늘립니다. 역으로 투여를 멈추면 알도스테론이 다시 올라와 칼륨이 떨어지고 증상이 재발하므로, 대부분 평생 약물 치료를 계속해야 합니다.
스피로노락톤 복용 중 식이 관리: 칼륨과 나트륨의 균형
스피로노락톤을 복용하면 자동으로 칼륨이 올라가므로, 음식으로 칼륨을 추가로 섭취하면 혈액 칼륨이 위험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반드시 피해야 할 식품:
- 칼륨 보충제가 들어간 처방식(신부전 식이)
- 닭 가슴살(칼륨 450 mg/100g)
- 계란 노른자(칼륨과 인 모두 높음)
- 시금치, 브로콜리 같은 녹색 채소(일부 고양이 간식)
안전한 식품:
- 일반 습식사료(대부분 칼륨 함량이 적절, 300~400 mg/100g)
- 흰살 생선(가자미, 흰살 참치 — 칼륨 중간 수준)
- 쇠고기, 돼지고기(칼륨이 적어 안전함)
- 생선 오일 추가(오메가3가 혈압 안정화 도움)
가장 흔한 실수: 저나트륨 식이를 고집하는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알도스테론증 자체가 나트륨을 유지하려는 호르몬이므로, 과도하게 저염식을 하면 오히려 부신이 더 활발하게 반응해 악순환이 생깁니다. 적절한 나트륨 수준(일반 사료 기준)을 유지하면서 칼륨만 조절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장기 모니터링: 3~6개월마다 재검사
스피로노락톤으로 증상이 안정되었다고 해서 약을 중단하면 안 됩니다. 약을 줄이거나 멈추면 알도스테론이 다시 올라와 증상이 재발합니다.
정기 검사 주기:
- 투여 시작 후 1주, 4주, 8주: 칼륨·나트륨·혈압
- 이후 3개월마다: 혈액검사와 혈압 측정
- 반년마다: 복부 초음파(부신 종양 크기 변화 확인)
혈압 강하제(amlodipine 등)를 함께 사용하면 고혈압 합병증(망막 손상, 신부전)을 더 빨리 예방할 수 있으므로, 초기 진단 후 수의사와 병용 여부를 상의하세요.
반려동물 건강 이상 시 자가진단 대신 반드시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