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나 잇몸 출혈이 자주 반복되고 상처가 쉽게 나는 강아지라면 혈액응고장애를 의심해봐야 할 수도 있다. 폰빌레브란트병(Von Willebrand Disease)은 혈액 응고에 필요한 단백질이 부족해서 생기는 유전질환인데, 특히 도베르만·세터·리트리버 같은 견종에서 자주 나타난다. 다만 진단 없이 가볍게 넘기면 수술 중 예상치 못한 출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폰빌레브란트병이란
혈액이 응고되는 과정은 복합하다. 혈소판이 손상된 혈관벽에 달라붙어 일차 지혈전을 만들고, 여러 응고인자가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마지막으로 혈전이 안정화된다. 이 모든 단계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지혈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폰빌레브란트인자(vWF)는 혈소판이 상처 부위에 접착하도록 돕는 중요한 단백질이다. 이것이 부족하면 혈소판들이 제때 모이지 못해 지혈에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흥미로운 점은 기존 응고검사(PT, aPTT)에서는 정상 수치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임상 증상은 분명한데 검사 수치는 비정상이 아닌 경우도 있어서 진단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폰빌레브란트병은 상염색체 열성 유전으로 전해진다. 양쪽 부모로부터 모두 비정상 유전자를 받아야 발병한다. 일부 견종에서 이 병이 집중된 이유는 번식 과정에서 유전적 다양성이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도베르만, 스코틀랜드 테리어, 체서피크 베이 리트리버 같은 견종에서는 5~15% 정도가 이 병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증상과 위험신호
코피가 가장 전형적인 신호다. 특별한 충격 없이도 자꾸 코에서 피가 나오거나, 나온 피가 멈추지 않고 흐른다면 주목해야 한다. 이 외에도 잇몸에서 피가 나는 증상, 혀나 발을 물어뜯다가 피가 흐르는 증상, 눈에서 피가 맺히는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작은 상처도 지혈에 일반적인 강아지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피가 계속 흐르거나, 피딱지가 떨어지면서 재출혈이 반복된다면 응고장애 검사를 고려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여성 강아지는 발정기나 출산 때 평소보다 많은 양의 출혈을 경험할 수도 있다.
가장 위험한 상황은 수술이나 치과 시술이다. 마취 상태에서 지혈 능력의 차이가 예상치 못한 출혈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수술을 계획하고 있다면 술 전에 반드시 응고장애 선별검사를 받는 것이 권장된다.
수술 전 필수 검사 항목
수술 전 동물병원에서 '혈액응고검사'를 권하는 이유는 여기 있다. 폰빌레브란트병을 확진하는 가장 정확한 검사는 폰빌레브란트인자 활성도(vWF:RCo) 측정이다. 이 수치가 50% 이하이면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출혈 위험을 나타낸다.
기본 검사 항목은 혈소판 개수, PT(프로트롬빈 시간), aPTT(활성화 부분 트롬보플라스틴 시간)를 포함한다. 혈색소량(Hematocrit)도 확인하는데, 만성적인 출혈이 있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응고인자 VIII 활성도 검사도 함께 시행될 수 있다.
한 가지 유념할 점은 폰빌레브란트인자가 스트레스, 운동, 채혈 방식에 따라 일시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치가 경계값에 있으면 시간 간격을 두고 재검사하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의 검사만으로 확진하기보다는 임상 증상과 함께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표준이다.
수술 중·후 관리
폰빌레브란트병이 있어도 적절한 준비 하에 수술을 할 수 있다. 수술 전에 진단 결과를 동물병원에 미리 알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마취 전에 신선냉동 혈장(Fresh Frozen Plasma) 수혈이나 지혈을 돕는 약물(예: 데스모프레신)을 투여할 수 있다. 이런 조치는 수술 중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한 표준 프로토콜이다.
수술 후에는 활동 제한이 필요하다. 과도한 움직임은 지혈된 부위를 건드릴 수 있으므로 안정이 중요하다. 혈액응고를 방해하는 약물(예: 아스피린 함유 NSAID)도 수술 후 수주간 피하는 것이 일반적 권고사항이다.
일상에서의 관리와 주의
폰빌레브란트병을 가진 강아지도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다. 다만 몇 가지 주의가 필요하다. 무리한 운동이나 거친 놀이는 피하고, 날카로운 물건으로 인한 상처를 예방하는 것이 좋다.
치과 질환도 주의 대상이다. 스케일링이나 발치 같은 치과 시술도 출혈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수술과 동일하게 사전검사를 해야 한다. 정기적인 칫솔질로 치석 축적을 미리 막는 것이 가장 현명한 예방이다.
새로운 약을 처방받을 때마다 강아지가 폰빌레브란트병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의료진에게 꼭 알려두자. 응고를 방해하는 약물을 피하거나 대체약물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번식과 유전
폰빌레브란트병을 가진 강아지는 번식에 참여하면 안 된다. 이미 진단받은 강아지가 있다면, 같은 혈통의 형제자매도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폰빌레브란트병은 완치 약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확한 진단과 미리 대비함으로써 충분히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질환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강아지와 보호자가 이 조건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반려동물 건강 이상 시 자가진단 대신 반드시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으세요.